사랑의 결실인 결혼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의 반복이다.
결혼에는 상희생과 헌신이 불가결한데, 이질적인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자기부정에 동의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결혼은 두 사람을 공동의 실존에 놓이게 만든다.
공동의 실존은 배우자의 개성과 개별적인 목표보다 상위개념으로 작용된다.
개인의 이득보다 공동의 이득이 우선하고, 개인적인 속성보다 공동의 총체성이 우선한다.
이로써 두 사람이 하나의 실존상태가 되는 것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육체관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 모든 과정에 사랑이 개입하는데, 앞서 살펴본 대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만들므로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결혼은, 그것의어리석음 유무에 상관없이, 겉으로 보기엔 꽤 종교적인 신성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는 완전한 타인이었던 배우자에게 종속되어 모든 판단과 결의를 헌납하고, 육체적으로는 성적 결정체인 자기 생식기에 대한 권한을 배우자에게 양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물이기에 결혼한 부부는 그들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게 되는데, 여기서 대상화란 그들을 부부로 존속시켜 주는 사랑을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로 입증해 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그 입증의 결과가 바로 물성ㅇ르 지닌 새로운 존재의 창조, 즉 자녀다.
자녀가 태어남으로써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마침내 배우자의 본성 속에 가둬두었던 자신의 본성을 회복할 기회를 얻는다.
부부에게 자녀는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그들이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기회인 것이다.
두 개의 성격이 사랑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합일을 이루었지만, 이 합일은 개인의 성격적 측면에서 봤을 땐 자기를 부정당하는 격렬한 통증이다.
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혼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의 인격 속에서 각자 자신을 닮은 성격을 출몰시키는 것이다.
부부에서 부모가 된 두 사람의 투쟁이 이렇게 시작된다.
자녀의 인격에서 배우자보다 자신의 성격적 특성을 더욱 확대하려는 욕망은 사랑 때문에 자신이 포기했던 개성의 연속성을 보장받으려는 일종의 보상심리다.
부모가 된 부부 관점에서 자녀란, 눈에 보이지 않던 그들의 사랑이 사물화 되어 나타난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증거인 동시에 상대방에게 귀속된 자신의 본성을 자녀에게 주이배 자녀를 확대된 자신의 일부로 편성하려는 욕망의 도구이다.
자녀를 통해 두 사람은 사랑은 사랑의 통일된 결과물을 얻어내고, 또한 개인으로서는 하나였던 자신이 둘로 증가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인데, 문제는 자녀 또한 부모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개성이므로 부모의 속성을 물려받았다고는 해도 자녀가 인식하는 자녀의 본질은 부모의 본성에서 파생된 결과물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 있다.
자녀에게 자녀 자신은 보모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제1의 본성, 부모라는 존재와 상관없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단 하나로 본인을 인식해버린다.
부모와 자녀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타자의 의식 속에서 정립한다.
내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함으로써 나와 타인을 구별하게 되고, 남과 다른 나의 개별성을 지향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상호 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기반이다.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의 의식 속에 타인의 개별성을 끌어들여 나와 별개의 존재임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나와 마주 보고 있는 한 사람을 나와 구별되는 개인으로 판단하여 그 사람을 나처럼 자유로운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인데, ㅂ모와 자녀 사이에서, 정확히는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 부모는 타인에게 허락하는 기본적인 인정조차 자녀에겐 허락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타인처럼 개인이 구별되지 않아서다.
부모는 자녀를 개인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자녀의 속성이 자기 안에 갇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의 결과물이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거룩한 대가로서 주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녀 또한 타인과 마찬가지로 나와 구별되는 하나의 개인임을 인정하는 부모는 매우 드물다.
자녀를 개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자녀를 향한 애정이 없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부모도 많다.
자녀를 나와 동등한 개인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자녀도 그에 대한 상호반응으로 부모를 개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보모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개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녀는 부모의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인식해 버린다.
부모에겐 개성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직 나를 위해 일생을 내 노예처럼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 주는 하나의 물건으로 부모를 취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됐음을 상기한다면, 사랑이야말로 한 삶의 일생을 추락시키는 가장 근원적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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